시조의 역사 - ◀ 원문보기 클릭 ▶

▒ 명칭.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 신조(新調) 시조(詩調)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만 쓰이고 있다.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 영언(永言). 장단가(長短歌). 시절단가(時節短歌) 가요(歌謠) 가곡(歌曲) 악장(樂章) 신성(新聲)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시조의 기원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는데 그 동안의 연구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외래기원설이다. 이는 다시 중국의 불가곡(佛歌曲)에서 수입되었다는 설과 한시(漢詩)를 번역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 두 설은 모두 오늘날 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재래기원설이다. 이는 다시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신요(神謠)나 민요 또는 무당의 노랫가락이 시조의 원형이라는 설이고, 둘째는 시조의 기원을 향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이다. 셋째 〈정읍사 井邑詞〉와 같은 6구체가(六句體歌)가 그 기원이라는 설과 넷째 고려가요가 붕괴되어 단형화하면서 시조시형이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 설은 너무 추상적이다. 시조시형과 가장 많이 닮은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무당의 노랫가락도 극히 후대에 발달한 곡조이기 때문에 사실과 맞지 않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시조의 기원은 네 번째 학설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沖)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 이조년(李兆年) 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 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 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 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상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네이버)▒ 필자 주시조를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두 동간 내고 고시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등장한 현대시조는 정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음보도 구도 장도 연도 파괴하였다.  아래 명기한 곳에서 부분 발췌 함.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시조개론    네이버 / 검색어 : 시조의 역사 시조(時調)시조 이전의 모든 시형(詩型)은 시조의 발생을 위한 준비이고, 시조 이래의 시형들은 시조에서 분파한 형식이라 할 만하다. 민족생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시형들은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곧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조만은 700∼800년을 두고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문학이다. 고대의 시조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沖)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 이조년(李兆年),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되었다.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시조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시조를 본격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 이은상 등이며, 19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1947년에 <가람시조집> 1948년에 <담원(薝園) 시조집> (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어 허술한 시조시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38∼39년에 <문장(文章)> <동아일보> 등을 통해 등단한 이호우(李鎬雨) 김상옥(金相沃) 등에 의해 시조는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호우는 현대시조에서 내면세계를 다루는 데 성공하여 현대시조의 격을 높인 공이 크다. 조종현(趙宗玄) 김오남(金午男) 등의 활약에 이어 이영도(李永道)·정훈(丁薰) 등은 제나름의 특유한 영토를 마련하였다.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은 시조 전문지인 <시조문학>(1960년 창간)을 34집까지 이끌어온 공이 크다. 시조 중흥에 크게 기여한 정부 주최의 ‘개천 경축 백일장'(1957년부터 3년간)에서는 정소파(鄭韶坡) 장순하(張諄河) 유성규(柳聖圭) 등이 배출되었고, 60년대 초에 신춘문예를 통하여 정완영(鄭梡永) 이우종(李祐鍾) 박경용(朴敬用) 이근배(李根培) 등에 뒤이은 역량있는 작가들이 속출하여 오늘의 시조 신단은 현역작가 수만도 약 200여 명에 달한다.1958년에는 <현대시조선총(現代時調選叢)>이 나왔으며, 1964년에는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었고 그 뒤 한국문인협회에는 시조분과가 마련되었다. 시조전문지로는 <시조문학>과 <현대시조>가 있으며, 시조시인에게만 주어지는 문학상으로는 노산문학상. 가람문학상. 정운문학상 등이 있다. 이은상은 양장(兩章)시조를 시도한 바 있으며, 단장(單章)시조. 동시조(童時調) 등을 시도한 이도 있다. 최근 신예작가들의 발랄 참신한 작품이 현대시조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시조의 명칭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 ·신조(新調) ·시조(詩調)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만 쓰이고 있다. 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 영언(永言) 장단가(長短歌) 시절단가(時節短歌) 가요(歌謠) 가곡(歌曲) 악장(樂章) 신성(新聲)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조의 종류 1) 평시조(平時調)     초 ·중 ·종장이 각 15자 내외, 총 45자 내외의 단형시조(短型時調)이다. 2) 엇시조(엇時調)     평시조보다 초 ·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자수(字數)가 무제한으로 길어지고 종장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중형시조(中型時調)를 말한다. 3) 사설시조(辭說時調)      평시조보다 초 ·중장이 제한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 사슬시조라고도 하는 장형시조(長型時調)이다. 4) 연시조(連時調)    한 제목 밑에 여러 수의 평시조를 엮어나간 시조.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이 이에 속한다. 5) 양장시조(兩章時調)     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시조. 이은상이 시도했으나 요즈음에는 이런 시형으로 짓는 이는 거의 없다. 6) 단장시조(單章時調)     평시조를 더욱 압축하여 초 ·중장을 제쳐놓고 종장만으로 시조의 맛을 내게 하려는 시조의 변형이다.    이는 단순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7) 동시조(童時調)     어린이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된 시조.     근래에 와서 시도되고 있으며 이는 날로 쓰이는 율이 높아가고 있다. 시조의 형식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조를 말할 때 ‘3장 6구(三章六句)’ '3장 8구(八句)' '3장 12구(十二句)' 등 구(句)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장(章)은 한결같이 3장이라고 하니 시조가 3장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3장이라고 하는 대신, 3행(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된다. 그러므로 시조의 장은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의 3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요, 이는 엇시조에서나 사설시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시조의 구에 대한 개념 규정은 여러 가지이지만,‘3장 6구설’과 ‘3장 12구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시조와 자유시와의 구분이 날로 불가능할 정도로 비정형화(非定型化)되어 가는 경향을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외형율로서의 리듬을 고려하여 자유시와 색다른 면을 더욱 부각되게 하려면 3장 6구로서의 느슨함보다는 3장 12구로 정형성을 팽팽히 매어 시조의 고유성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시조형식의 3장 12구체가 지니는 자수는 초. 중. 종장 각 15자 내외로 잡아서 한 수가 소요하는 자수는 45자 내외가 되는 셈이다. 각 구의 자수가 약간씩 넘나드는 것은 무방하나 종장 처리에서만은 종장 제1구의 3자를 어기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종장 제2구는 5자 이상을 확보할 때 시조의 율격이 살아난다. 시조의 내용고시조(古時調)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인(知人)간의 별리(別離)를 슬퍼하는 이별애상(離別哀傷)의 노래라든지, 임과 이별한 후 혼자 자는 방에서 떠나간 임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도 그 임을 못잊어 사모하는 내용의 공규원모(空閨怨慕)를 읊은 노래, 시골에서의 한가로운 생활을 노래한 강호한정(江湖閑情)의 노래, 시골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다룬 전가한거(田家閑居)의 노래, 또는 연로하거나 세사 번우(煩憂)하거나 왕이 버리거나 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귀전(歸田)하겠다는 뜻을 밝힌 치사귀전(致仕歸田)의 노래, 곤궁하게 살면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천도(天道)를 지키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노래가 있으며, 군왕을 사모하여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인 연주충군(戀主忠君)의 노래, 군왕의 은덕을 깊이 느껴 매우 고맙게 여기는 감격군은(感激君恩)의 노래 등이 있다. 또한 정성스런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키고 움직이지 아니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단심충절(丹心忠節)의 노래를 비롯하여, 국사를 걱정하여 세상이 되어 가는 형편을 탄식하고 근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가 있다. 그밖에도 글을 배우고 덕을 닦는 것을 내용으로 한 학문수덕(學問修德)의 노래, 죽은 사람 또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모하여 그 덕을 찬미하고 칭송하는 노래,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三綱 ·五常 ·五倫)를 주제로 한 노래, 부모를 생각하며 잘 섬기는 효행을 주제로 한 노래, 잘 가르쳐서 지난날의 잘못을 깨치게 하고 타일러 주의시키는 것을 주제로 한 교회경계(敎誨警戒)의 노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구경하는 것을 주제로 한 소요유람의 노래, 인생행락 또는 인생무상의 노래, 심중에 품은 생각을 노래한 것 등 눈에 어리는 정경이나 여러 가지 감추기 어려운 정회 또는 기개나 의지 등의 것이 있다. 한편, 현대시조의 내용은 너무나 다양다기하여 일일이 분류할 필요도 없다. 시조와 시조집조선시대에 구전되어오던 시조를 모아 시조집으로 편찬하였다.1) 청구영언(靑丘永言)     1728년(영조 4)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 엮음.     998수를 곡조에 따라 분류하고 작자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그 밖에 가사 17수도 수록되어 있다.2) 해동가요(海東歌謠)      1763년(영조 39)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엮음. 883수를 작가별로 분류하고 자작시도 수록하였다.3) 가곡원류(歌曲源流)      1876년(고종13) 박효관(朴孝寬) ·안민영(安玟英) 엮음.      시조와 가사수를 남창(男唱) ·여창(女唱)으로 나누고 곡조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     <해동악장(海東樂章)> 또는 <청구악장(靑丘樂章)>이라고도 하며, 부록으로 <여창유취(女唱類聚)>가 있다.4) 고금가곡(古今歌曲)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영조 연간으로 추정되며,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이 엮었다.     313수를 작품 내용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5) 동가선(東歌選)     순조(純祖) 때 백경현(白景炫)이 엮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35수를 작자 ·내용별로 분류 수록하였다.6)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정확한 연대와 편자는 미상이나 철종 때로 짐작되며, 시조 224수, 잡가 3편, 가사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집(歌集) 중에서 유일한 판본(板本)이며 순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시조의 종장 끝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시조의 특징1) 제목을 반드시 붙인다.고시조에서는 연시조의 경우 불과 몇몇 작품에만 제목이 붙어 있을 뿐이다.현대시조는 내용을 축약(縮約), 암시할 수 있는 제목을 반드시 붙이는 것이 상례이다.2) 시형(詩形)의 배열이 비교적 자유롭다.고시조는 장별(章別)조차 구분이 없이 내리닫이로 잇대어 기술했으나, 현대시조는 그 배열이 연시조의 경우 수별(首別)의 별도 처리는 물론 초. 중. 종장을 구별해 씀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통한 배열도 고려한다.3) 연시조를 쓰는 경향이 많다.고시조는 대부분이 단수(單首)로 되어 있으나, 현대시조는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문명상(像)이나 깊은 사상을 다스리기에는 단수 45자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연시조를 쓰는 경향으로 기울고 있다.4) 허사(虛辭)인 ‘어즈버’ ‘아마도’ ‘아희야’ ‘하노라’등은 배제한다.5) 율격(律格)을 음수율에만 의존하지 않고 낱말이 지니는 의미나 호흡에서도 율(律)을 잡는다.6) 감각적 표현도 애용한다.7) 음풍농월조(吟風弄月調)의 외면세계를 다루거나 표피적 감정처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세계로 파고들어 인성(人性)의 심층묘사나 사상성을 다루기 위해 메타포(metaphor)를 즐겨 쓴다.8) 파격의 빈도가 많다.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검색어. 시조)

작성자 검정삿갓
작성일 2005/12/15 (목) 20:49
ㆍ조회: 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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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역사

명칭.
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

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 신조(新調) 시조(詩調)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만 쓰이고 있다.

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 영언(永言). 장단가(長短歌). 시절단가(時節短歌) 가요(歌謠) 가곡(歌曲) 악장(樂章) 신성(新聲)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시조의 기원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는데 그 동안의 연구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외래기원설이다. 이는 다시 중국의 불가곡(佛歌曲)에서 수입되었다는 설과 한시(漢詩)를 번역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 두 설은 모두 오늘날 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재래기원설이다. 이는 다시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신요(神謠)나 민요 또는 무당의 노랫가락이 시조의 원형이라는 설이고,
둘째는 시조의 기원을 향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이다.
셋째 〈정읍사 井邑詞〉와 같은 6구체가(六句體歌)가 그 기원이라는 설과
넷째 고려가요가 붕괴되어 단형화하면서 시조시형이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 설은 너무 추상적이다.

시조시형과 가장 많이 닮은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무당의 노랫가락도 극히 후대에 발달한 곡조이기 때문에 사실과 맞지 않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시조의 기원은 네 번째 학설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沖)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 이조년(李兆年) 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 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 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 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상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네이버)

▒ 필자 주
시조를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두 동간 내고 고시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등장한 현대시조는 정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음보도 구도 장도 연도 파괴하였다.

  아래 명기한 곳에서 부분 발췌 함.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시조개론
    네이버 / 검색어 : 시조의 역사


시조(時調)
시조 이전의 모든 시형(詩型)은 시조의 발생을 위한 준비이고, 시조 이래의 시형들은 시조에서 분파한 형식이라 할 만하다. 민족생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시형들은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곧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조만은 700∼800년을 두고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문학이다.

고대의 시조
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沖)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 이조년(李兆年),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시조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시조를 본격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 이은상 등이며, 19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1947년에 <가람시조집> 1948년에 <담원(薝園) 시조집> (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어 허술한 시조시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38∼39년에 <문장(文章)> <동아일보> 등을 통해 등단한 이호우(李鎬雨) 김상옥(金相沃) 등에 의해 시조는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호우는 현대시조에서 내면세계를 다루는 데 성공하여 현대시조의 격을 높인 공이 크다. 조종현(趙宗玄) 김오남(金午男) 등의 활약에 이어 이영도(李永道)·정훈(丁薰) 등은 제나름의 특유한 영토를 마련하였다.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은 시조 전문지인 <시조문학>(1960년 창간)을 34집까지 이끌어온 공이 크다. 시조 중흥에 크게 기여한 정부 주최의 ‘개천 경축 백일장'(1957년부터 3년간)에서는 정소파(鄭韶坡) 장순하(張諄河) 유성규(柳聖圭) 등이 배출되었고, 60년대 초에 신춘문예를 통하여 정완영(鄭梡永) 이우종(李祐鍾) 박경용(朴敬用) 이근배(李根培) 등에 뒤이은 역량있는 작가들이 속출하여 오늘의 시조 신단은 현역작가 수만도 약 200여 명에 달한다.

1958년에는 <현대시조선총(現代時調選叢)>이 나왔으며, 1964년에는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었고 그 뒤 한국문인협회에는 시조분과가 마련되었다. 시조전문지로는 <시조문학>과 <현대시조>가 있으며, 시조시인에게만 주어지는 문학상으로는 노산문학상. 가람문학상. 정운문학상 등이 있다. 이은상은 양장(兩章)시조를 시도한 바 있으며, 단장(單章)시조. 동시조(童時調) 등을 시도한 이도 있다. 최근 신예작가들의 발랄 참신한 작품이 현대시조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시조의 명칭
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고려가요 ·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

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 ·신조(新調) ·시조(詩調)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만 쓰이고 있다. 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 영언(永言) 장단가(長短歌) 시절단가(時節短歌) 가요(歌謠) 가곡(歌曲) 악장(樂章) 신성(新聲)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조의 종류

1) 평시조(平時調)
    초 ·중 ·종장이 각 15자 내외, 총 45자 내외의 단형시조(短型時調)이다.

2) 엇시조(엇時調)
    평시조보다 초 ·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자수(字數)가 무제한으로 길어지고 종장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중형시조(中型時調)를 말한다.
3) 사설시조(辭說時調)
     평시조보다 초 ·중장이 제한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 사슬시조라고도 하는 장형시조(長型時調)이다.

4) 연시조(連時調)
    한 제목 밑에 여러 수의 평시조를 엮어나간 시조.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이 이에 속한다.

5) 양장시조(兩章時調)
    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시조. 이은상이 시도했으나 요즈음에는 이런 시형으로 짓는 이는 거의 없다.

6) 단장시조(單章時調)
    평시조를 더욱 압축하여 초 ·중장을 제쳐놓고 종장만으로 시조의 맛을 내게 하려는 시조의 변형이다.
    이는 단순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7) 동시조(童時調)
    어린이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된 시조. 
    근래에 와서 시도되고 있으며 이는 날로 쓰이는 율이 높아가고 있다.


시조의 형식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조를 말할 때 ‘3장 6구(三章六句)’ '3장 8구(八句)' '3장 12구(十二句)' 등 구(句)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장(章)은 한결같이 3장이라고 하니 시조가 3장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3장이라고 하는 대신, 3행(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된다. 그러므로 시조의 장은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의 3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요, 이는 엇시조에서나 사설시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시조의 구에 대한 개념 규정은 여러 가지이지만,‘3장 6구설’과 ‘3장 12구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시조와 자유시와의 구분이 날로 불가능할 정도로 비정형화(非定型化)되어 가는 경향을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외형율로서의 리듬을 고려하여 자유시와 색다른 면을 더욱 부각되게 하려면 3장 6구로서의 느슨함보다는 3장 12구로 정형성을 팽팽히 매어 시조의 고유성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시조형식의 3장 12구체가 지니는 자수는 초. 중. 종장 각 15자 내외로 잡아서 한 수가 소요하는 자수는 45자 내외가 되는 셈이다. 각 구의 자수가 약간씩 넘나드는 것은 무방하나 종장 처리에서만은 종장 제1구의 3자를 어기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종장 제2구는 5자 이상을 확보할 때 시조의 율격이 살아난다.


시조의 내용
고시조(古時調)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인(知人)간의 별리(別離)를 슬퍼하는 이별애상(離別哀傷)의 노래라든지, 임과 이별한 후 혼자 자는 방에서 떠나간 임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도 그 임을 못잊어 사모하는 내용의 공규원모(空閨怨慕)를 읊은 노래, 시골에서의 한가로운 생활을 노래한 강호한정(江湖閑情)의 노래, 시골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다룬 전가한거(田家閑居)의 노래, 또는 연로하거나 세사 번우(煩憂)하거나 왕이 버리거나 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귀전(歸田)하겠다는 뜻을 밝힌 치사귀전(致仕歸田)의 노래, 곤궁하게 살면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천도(天道)를 지키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노래가 있으며, 군왕을 사모하여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인 연주충군(戀主忠君)의 노래, 군왕의 은덕을 깊이 느껴 매우 고맙게 여기는 감격군은(感激君恩)의 노래 등이 있다. 또한 정성스런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키고 움직이지 아니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단심충절(丹心忠節)의 노래를 비롯하여, 국사를 걱정하여 세상이 되어 가는 형편을 탄식하고 근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가 있다.

그밖에도 글을 배우고 덕을 닦는 것을 내용으로 한 학문수덕(學問修德)의 노래, 죽은 사람 또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모하여 그 덕을 찬미하고 칭송하는 노래,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三綱 ·五常 ·五倫)를 주제로 한 노래, 부모를 생각하며 잘 섬기는 효행을 주제로 한 노래, 잘 가르쳐서 지난날의 잘못을 깨치게 하고 타일러 주의시키는 것을 주제로 한 교회경계(敎誨警戒)의 노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구경하는 것을 주제로 한 소요유람의 노래, 인생행락 또는 인생무상의 노래, 심중에 품은 생각을 노래한 것 등 눈에 어리는 정경이나 여러 가지 감추기 어려운 정회 또는 기개나 의지 등의 것이 있다. 한편, 현대시조의 내용은 너무나 다양다기하여 일일이 분류할 필요도 없다.


시조와 시조집
조선시대에 구전되어오던 시조를 모아 시조집으로 편찬하였다.

1) 청구영언(靑丘永言)
    1728년(영조 4)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 엮음. 
    998수를 곡조에 따라 분류하고 작자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그 밖에 가사 17수도 수록되어 있다.

2) 해동가요(海東歌謠)
     1763년(영조 39)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엮음. 883수를 작가별로 분류하고 자작시도 수록하였다.

3) 가곡원류(歌曲源流)
     1876년(고종13) 박효관(朴孝寬) ·안민영(安玟英) 엮음. 
     시조와 가사수를 남창(男唱) ·여창(女唱)으로 나누고 곡조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 
    <해동악장(海東樂章)> 또는 <청구악장(靑丘樂章)>이라고도 하며, 부록으로 <여창유취(女唱類聚)>가 있다.

4) 고금가곡(古今歌曲)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영조 연간으로 추정되며,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이 엮었다. 
    313수를 작품 내용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

5) 동가선(東歌選)
    순조(純祖) 때 백경현(白景炫)이 엮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35수를 작자 ·내용별로 분류 수록하였다.

6)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정확한 연대와 편자는 미상이나 철종 때로 짐작되며, 시조 224수, 잡가 3편, 가사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집(歌集) 중에서 유일한 판본(板本)이며 순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시조의 종장 끝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시조의 특징

1) 제목을 반드시 붙인다.
고시조에서는 연시조의 경우 불과 몇몇 작품에만 제목이 붙어 있을 뿐이다.
현대시조는 내용을 축약(縮約), 암시할 수 있는 제목을 반드시 붙이는 것이 상례이다.

2) 시형(詩形)의 배열이 비교적 자유롭다.
고시조는 장별(章別)조차 구분이 없이 내리닫이로 잇대어 기술했으나, 현대시조는 그 배열이 연시조의 경우 수별(首別)의 별도 처리는 물론 초. 중. 종장을 구별해 씀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통한 배열도 고려한다.

3) 연시조를 쓰는 경향이 많다.
고시조는 대부분이 단수(單首)로 되어 있으나, 현대시조는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문명상(像)이나 깊은 사상을 다스리기에는 단수 45자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연시조를 쓰는 경향으로 기울고 있다.

4) 허사(虛辭)인 ‘어즈버’ ‘아마도’ ‘아희야’ ‘하노라’등은 배제한다.

5) 율격(律格)을 음수율에만 의존하지 않고 낱말이 지니는 의미나 호흡에서도 율(律)을 잡는다.

6) 감각적 표현도 애용한다.

7) 음풍농월조(吟風弄月調)의 외면세계를 다루거나 표피적 감정처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세계로 파고들어 인성(人性)의 심층묘사나 사상성을 다루기 위해 메타포(metaphor)를 즐겨 쓴다.

8) 파격의 빈도가 많다.


출처 : 네이버 백과 사전 (검색어.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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