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과 그녀의 시 - ◀ 원문보기 클릭 ▶

본관 :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활동분야 : 시화 주요저서 :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출생년도 : 1563년 사망년도 : 1589년 조선이 낳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명종 18년(1563),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이름은 초희(楚姬)이고 난설헌(蘭雪軒)은 그의 호이다.천재시인 난설헌의 소녀시절은 아버지 허엽의 관직생활로 부유하였고, 그의 시세계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준 친 오라버니 허봉도 난설헌 열살 때 대과에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 교리가 되는데, 이러한 오라버니의 출세도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난설헌의 꿈을 한껏 부풀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난설헌은 14살 되던 해, 한 살 위인 교리 김첨의 아들인 김성립과 결혼을 하게 된다.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강당의 동창이었고 또한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혼담이 이루어졌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있는 집안이었고, 시어머니 송씨 역시 당내 경학으로 유명한 이조판서 송기수의 딸이었다.허균은 누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마지 않는> <오호라 살아서는 부부사이가 좋지 않더니, 죽어서도 제사를 받들어 모실 아들하나 없구나. 아름다운 구슬이 깨어졌으니 그 슬픔이 어찌 끝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부금슬도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던 난설헌에게 설상가상으로 밀어닥친 불행은 사랑하는 두 자녀를 차례로 잃은 일이었다.그 충격으로 유산까지 하게 되는 등 불운이 연속되었다.난설헌을 애지중지하던 아버지 허엽은 난설헌 18세 되던 해 경상감사 벼슬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상주 객관에서 돌아가셨고, 가장 믿고 따랐던 둘째 오라버니 허봉 역시 난설헌이 21세 되던 해 동인에 속한 학자들과 율곡을 논하다 죄를 얻어 갑산으로 귀양갔다 풀려난 후에도 한양에는 들어갈 수 없어 금강산을 떠돌다가 끝내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객사하는 비운을 맞게되니. 난설헌의 비통한 심정을 누가 알았으리오.허봉이 죽고 1년이 지나 27세 되던 해 이 세상을 하직했다.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여성의 삶의 목표가 되던 시대에 현숙한 어머니와 어진 부인이 될 수 없었던 난설헌에게 단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화산처럼 넘쳐 흐르는 시혼의 분출이었다.난설헌의 시풍은 일찍이 오라버니 허봉과 당시 삼당시인으로 유명했던 이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주위의 사물을 매우 정감있게 묘사하고, 시어에 있어서도 평이하고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점이 특징이었다.1589년 3월 19일 꽃다운 나이 27살에 요절한 누이 난설헌의 재능을 애석하게 여긴 동생 허균은 그 유작을 모아 <난설헌고>를 편집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초간본이 나온 것은 선조 41년(1608)으로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지 19년 후의 일이었다. 그 사이 난설헌의 시는 헌신적인 허균의 노력에 의해 멀리 중국까지 알려지게 되었다.1579년은 정유왜란의 해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명나라 원군이 조선에 들어오는데, 1598년 봄 명나라 시인 오명제가 조선의 시문을 모아 <조선시담>을 엮은 과정에서, 당시 중국의 장군들을 접대하는 관직인 경리감독이었던 허성과 병조좌랑이었던 허균의 집에 오명제가 머물게 된 것이 난설헌 시가 중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궁녀가 ‘겐지모노가타리’를 써서 세계의 여류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문학계에서의 여성 활동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 규방문학의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허난설헌과 기방문학의 최고라는 황진이의 문학이 있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 났어도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금옥(金玉) 같은 작품들은 스르르 사장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난설헌의 수많은 옥작(玉作)들이 죽기 직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나마 동생 허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주옥같은 몇몇 작품들조차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내려앉은 물방울에 썩어 들어갔거나 어느 집 불쏘시개가 되었거나 땅 속에 묻혀 미생물의 변변치 않은 먹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허균으로 살아난 그녀의 작품들은 우선 명나라에서부터 인기를 끌었었다. 최근의 한 기사에서는 한류 열풍을 일으킨 최초의 인물이 허난설헌(1563∼1589)이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보다 명나라에서 먼저 나온 그녀의 책은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녀에 대한 중국인들의 동경은 ‘이름 따라 짓기’로 이어졌는데 소(小)설헌 등의 이름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는 안 보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그의 문집을 중국에 소개한 명나라의 3대 문사 가운데 한 명인 주지번은 그녀의 글을, "티끌 같은 세상 밖에 휘날리고 수려하면서도 나약하지 않으며 허심탄회하면서도 뼈가 있다.”라고 높이 평했으며, <열조시집>을 엮은 명나라의 전겸익은 “난설헌은 조선 사람이다. 그녀의 오라버니 허봉과 동생 허균은 모두 장원을 한 천재들인데 허난설헌의 시는 오라버니인 허봉과 동생인 허균보다 뛰어나다.” 라고 평가했다.허난설헌의 작품은 사랑, 애상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묘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허난설헌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오빠와 동생이다. 허난설헌의 집안은 학문을 매우 중요시 여겼고,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관을 지닌 가문이었다.난설헌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간파한 허봉과 허균은 일부러 그녀에게 선생까지 붙여주었다. 그가 바로 이달인데 그는 양반의 핏줄을 타고 났으나 모친이 기녀였기 때문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인 허봉과 허균은 신분을 떠나 그를 실력으로 평가했다. 허난설헌은 이달에게 배우면서 가난한 이들과 핍박받는 자들의 설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에 그녀는 규방의 아녀자가 아닌 가난한 여인네의 심정을 읊은 시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9살부터 시작되었다.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안동 명문가인 안동 김씨 가문에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남편 되는 김성립은 난설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졸부(拙夫)였고, 시어머니인 송 씨 또한 만만찮은 성격으로 난설헌과 갈등이 잦았다고 전해진다.남편 김성립은 학문도 형편없는데다가 외모도 변변치 않았는데 게다가 기방 출입이 잦으니 오로지 남편만 보고 시집온 허난설헌은 의지할 데가 없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딸과 아들마저 어린 나이에 생을 다 하고 저승으로 갔으며 임신하고 있던 아이마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었으니 허난설헌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허경진님께서 쓰신 <허균 평전>을 읽어보면 희세의 천재였던 허난설헌의 한(恨 )은 세 가지였다고 전해진다.첫째,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이면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둘째,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셋째, 하필이면 수많은 남자 가운데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그녀가 쓴 작품은 주로 한시였다. 7언 절구, 7언 율시, 오언 절구, 오언고시, 사륙문 등 다양했다. 한시였던 덕분에 명나라에서는 아주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그녀의 시가 ‘한글’로 쓰여지지 않은 게 무척 아쉽기만 하다. 한글로 표현했더라면 당시 우리의 한을 더 잘 느낄 수 있을뿐더러 고어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만 감사하자.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감사하자.다음은 7언절구(일곱 글자씩 4구로 된 시)로 쓰여 진 한시이다.  선조구사문방우(仙曹舊賜文房友) : 신선리에서 오래 전에 내려 주신 문방의 벗으로  봉기추규원경여(奉奇秋閨玩景餘) : 아름답게 만들어진 가을이 규중문에서 장난하는 것을 그리노라.  응향오동묘월색(應向梧桐描月色) :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달빛도 그려보고  긍수등화주충어(肯隨燈火注虫漁) : 등불을 따라 가을을 즐기며, 벌레와 물고기도 그려 보노라.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시이다. 나는 가을 풍경이 규중문에서 장난한다고 표현한 싯구에서 감동을 받았다. 뭐락고 할까? 고급스러운 의인법이라고 할까? 아름다운 가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작가의 시선이 곱기만 하다.다음 한시는 남편인 김성립이 공부라고 한답시고, 아내인 허난설헌을 내팽개치다시피 할 때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이 때 난설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방님 대신 내가 과거를 봐야 하는데.....’어쨌든 허난설헌도 여자인지라 남편의 사랑을 무던히도 그리워했다. 못난 남편이라도 하늘같이 바라는 이가 아닌가?  연약사담양양비(燕掠斜薝兩兩飛) : 제비는 치자나무 비스듬히 스치듯 쌍쌍이 날고  낙화요란박라의(落花撩亂撲羅衣) : 떨어지는 꽃은 어지러움을 안고 비단 옷을 스치는구나.  동방극목상심처(洞房極目傷心處) : 내 눈은 동방(신방)을 향하니 마음엔 상처뿐인데  초록강남인미귀(草綠江南人未歸) : 풀이 파래져도 강남의 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잘 나타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이 파래져도’라는 표현은 그리움의 극치를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머리 나쁜 임이 공부를 하시겠다는데 꼬일 수도 없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다음은 딸과 아들을 잃은 뒤 그 고통을 읊은 시다. 제목은 ‘곡자(哭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픈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 두 무덤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 하얀 버드나무 가지에 바람은 쓸쓸히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 도깨비불은 솔, 오동나무 숲에서 반짝인다.  紙錢招汝魄(지전초여백) :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며  玄酒尊汝丘(현주존여구) : 검은 술을 받들어 너의 무덤에 붓는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 남매의 혼은 서로 알아보고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 밤마다 서로 좇으며 노닐 거야.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 비록 뱃속에 어린아이가 있다지만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 어찌 편안히 장성하길 바라겠느냐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 황대사를 읊으며 흐느끼노라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 피눈물 슬픈 소리를 삼키노라병약한 어미를 닮은 아이들은 일찍 요절했으니 허난설헌의 팔자도 참으로 기구하다. 게다가 배속에 있던 아이까지 죽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러한 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일찍 죽은 것 같다. 남편은 무심하지, 의지가 되었던 아이들은 매일 골골거리다 황천을 건넜지. 무슨 살 낙이 있었을까?허난설헌과 같은 출중한 시인이 요절을 하다 보니 어떤 이들은 그의 남편 김성립을 매우 미워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도 조선시대 ‘안 맞아도 끼워 놓는 결혼제도’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란 말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허난설헌이 아무리 훌륭한들 눈에 차겠느냐는 것이다. 그에게 난설헌은 이상형이 아니었던 것. 적당히 애교 있고, 적당히 남편을 굴릴 줄도 하는 요부가 어울렸을 수도 있다.암튼 지나간 고인의 아름다운 자취를 살핀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귀한 시간이다. ‘난 왜?’하는 생각도 들지만 허난설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편안히 잠자리에 든다. 여기서 ‘하필이면’이란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하필(何必)’이란 말을 보면 ‘어찌 꼭’이란 말이다. 어찌 꼭 그녀의 운명은 그래야만 했을까?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서 그녀가 천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천한 집의 종으로 태어나면 글 한 자 배울 수 없었을 테니 제 아무리 천재적 능력을 타고 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작성자 검정삿갓
작성일 2007/11/06 (화) 19:59
ㆍ조회: 1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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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과 그녀의 시

본관 :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활동분야 : 시화
주요저서 :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출생년도 : 1563년
사망년도 : 1589년

조선이 낳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명종 18년(1563),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초희(楚姬)이고 난설헌(蘭雪軒)은 그의 호이다.

천재시인 난설헌의 소녀시절은 아버지 허엽의 관직생활로 부유하였고, 그의 시세계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준 친 오라버니 허봉도 난설헌 열살 때 대과에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 교리가 되는데, 이러한 오라버니의 출세도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난설헌의 꿈을 한껏 부풀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난설헌은 14살 되던 해, 한 살 위인 교리 김첨의 아들인 김성립과 결혼을 하게 된다.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강당의 동창이었고 또한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혼담이 이루어졌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있는 집안이었고, 시어머니 송씨 역시 당내 경학으로 유명한 이조판서 송기수의 딸이었다.

허균은 누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마지 않는> <오호라 살아서는 부부사이가 좋지 않더니, 죽어서도 제사를 받들어 모실 아들하나 없구나. 아름다운 구슬이 깨어졌으니 그 슬픔이 어찌 끝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부금슬도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던 난설헌에게 설상가상으로 밀어닥친 불행은 사랑하는 두 자녀를 차례로 잃은 일이었다.
그 충격으로 유산까지 하게 되는 등 불운이 연속되었다.

난설헌을 애지중지하던 아버지 허엽은 난설헌 18세 되던 해 경상감사 벼슬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상주 객관에서 돌아가셨고, 가장 믿고 따랐던 둘째 오라버니 허봉 역시 난설헌이 21세 되던 해 동인에 속한 학자들과 율곡을 논하다 죄를 얻어 갑산으로 귀양갔다 풀려난 후에도 한양에는 들어갈 수 없어 금강산을 떠돌다가 끝내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객사하는 비운을 맞게되니. 난설헌의 비통한 심정을 누가 알았으리오.

허봉이 죽고 1년이 지나 27세 되던 해 이 세상을 하직했다.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여성의 삶의 목표가 되던 시대에 현숙한 어머니와 어진 부인이 될 수 없었던 난설헌에게 단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화산처럼 넘쳐 흐르는 시혼의 분출이었다.

난설헌의 시풍은 일찍이 오라버니 허봉과 당시 삼당시인으로 유명했던 이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주위의 사물을 매우 정감있게 묘사하고, 시어에 있어서도 평이하고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점이 특징이었다.

1589년 3월 19일 꽃다운 나이 27살에 요절한 누이 난설헌의 재능을 애석하게 여긴 동생 허균은 그 유작을 모아 <난설헌고>를 편집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초간본이 나온 것은 선조 41년(1608)으로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지 19년 후의 일이었다. 그 사이 난설헌의 시는 헌신적인 허균의 노력에 의해 멀리 중국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1579년은 정유왜란의 해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명나라 원군이 조선에 들어오는데, 1598년 봄 명나라 시인 오명제가 조선의 시문을 모아 <조선시담>을 엮은 과정에서, 당시 중국의 장군들을 접대하는 관직인 경리감독이었던 허성과 병조좌랑이었던 허균의 집에 오명제가 머물게 된 것이 난설헌 시가 중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궁녀가 ‘겐지모노가타리’를 써서 세계의 여류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문학계에서의 여성 활동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 규방문학의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허난설헌과 기방문학의 최고라는 황진이의 문학이 있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 났어도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금옥(金玉) 같은 작품들은 스르르 사장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난설헌의 수많은 옥작(玉作)들이 죽기 직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동생 허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주옥같은 몇몇 작품들조차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내려앉은 물방울에 썩어 들어갔거나 어느 집 불쏘시개가 되었거나 땅 속에 묻혀 미생물의 변변치 않은 먹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허균으로 살아난 그녀의 작품들은 우선 명나라에서부터 인기를 끌었었다.

최근의 한 기사에서는 한류 열풍을 일으킨 최초의 인물이 허난설헌(1563∼1589)이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보다 명나라에서 먼저 나온 그녀의 책은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녀에 대한 중국인들의 동경은 ‘이름 따라 짓기’로 이어졌는데 소(小)설헌 등의 이름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는 안 보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문집을 중국에 소개한 명나라의 3대 문사 가운데 한 명인 주지번은 그녀의 글을, "티끌 같은 세상 밖에 휘날리고 수려하면서도 나약하지 않으며 허심탄회하면서도 뼈가 있다.”라고 높이 평했으며, <열조시집>을 엮은 명나라의 전겸익은 “난설헌은 조선 사람이다. 그녀의 오라버니 허봉과 동생 허균은 모두 장원을 한 천재들인데 허난설헌의 시는 오라버니인 허봉과 동생인 허균보다 뛰어나다.” 라고 평가했다.

허난설헌의 작품은 사랑, 애상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묘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허난설헌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오빠와 동생이다. 허난설헌의 집안은 학문을 매우 중요시 여겼고,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관을 지닌 가문이었다.

난설헌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간파한 허봉과 허균은 일부러 그녀에게 선생까지 붙여주었다. 그가 바로 이달인데 그는 양반의 핏줄을 타고 났으나 모친이 기녀였기 때문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인 허봉과 허균은 신분을 떠나 그를 실력으로 평가했다. 허난설헌은 이달에게 배우면서 가난한 이들과 핍박받는 자들의 설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에 그녀는 규방의 아녀자가 아닌 가난한 여인네의 심정을 읊은 시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9살부터 시작되었다.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안동 명문가인 안동 김씨 가문에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남편 되는 김성립은 난설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졸부(拙夫)였고, 시어머니인 송 씨 또한 만만찮은 성격으로 난설헌과 갈등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남편 김성립은 학문도 형편없는데다가 외모도 변변치 않았는데 게다가 기방 출입이 잦으니 오로지 남편만 보고 시집온 허난설헌은 의지할 데가 없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딸과 아들마저 어린 나이에 생을 다 하고 저승으로 갔으며 임신하고 있던 아이마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었으니 허난설헌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허경진님께서 쓰신 <허균 평전>을 읽어보면 희세의 천재였던 허난설헌의 한(恨 )은 세 가지였다고 전해진다.

첫째,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이면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
둘째,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셋째, 하필이면 수많은 남자 가운데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그녀가 쓴 작품은 주로 한시였다. 7언 절구, 7언 율시, 오언 절구, 오언고시, 사륙문 등 다양했다. 한시였던 덕분에 명나라에서는 아주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그녀의 시가 ‘한글’로 쓰여지지 않은 게 무척 아쉽기만 하다. 한글로 표현했더라면 당시 우리의 한을 더 잘 느낄 수 있을뿐더러 고어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만 감사하자.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감사하자.

다음은 7언절구(일곱 글자씩 4구로 된 시)로 쓰여 진 한시이다.

  선조구사문방우(仙曹舊賜文房友) : 신선리에서 오래 전에 내려 주신 문방의 벗으로
  봉기추규원경여(奉奇秋閨玩景餘) : 아름답게 만들어진 가을이 규중문에서 장난하는 것을 그리노라.
  응향오동묘월색(應向梧桐描月色) :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달빛도 그려보고
  긍수등화주충어(肯隨燈火注虫漁) : 등불을 따라 가을을 즐기며, 벌레와 물고기도 그려 보노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시이다. 나는 가을 풍경이 규중문에서 장난한다고 표현한 싯구에서 감동을 받았다. 뭐락고 할까? 고급스러운 의인법이라고 할까? 아름다운 가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작가의 시선이 곱기만 하다.

다음 한시는 남편인 김성립이 공부라고 한답시고, 아내인 허난설헌을 내팽개치다시피 할 때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이 때 난설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방님 대신 내가 과거를 봐야 하는데.....’

어쨌든 허난설헌도 여자인지라 남편의 사랑을 무던히도 그리워했다. 못난 남편이라도 하늘같이 바라는 이가 아닌가?

  연약사담양양비(燕掠斜薝兩兩飛) : 제비는 치자나무 비스듬히 스치듯 쌍쌍이 날고
  낙화요란박라의(落花撩亂撲羅衣) : 떨어지는 꽃은 어지러움을 안고 비단 옷을 스치는구나.
  동방극목상심처(洞房極目傷心處) : 내 눈은 동방(신방)을 향하니 마음엔 상처뿐인데
  초록강남인미귀(草綠江南人未歸) : 풀이 파래져도 강남의 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잘 나타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이 파래져도’라는 표현은 그리움의 극치를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머리 나쁜 임이 공부를 하시겠다는데 꼬일 수도 없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딸과 아들을 잃은 뒤 그 고통을 읊은 시다. 제목은 ‘곡자(哭子)’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픈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 두 무덤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 하얀 버드나무 가지에 바람은 쓸쓸히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 도깨비불은 솔, 오동나무 숲에서 반짝인다.
  紙錢招汝魄(지전초여백) :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며
  玄酒尊汝丘(현주존여구) : 검은 술을 받들어 너의 무덤에 붓는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 남매의 혼은 서로 알아보고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 밤마다 서로 좇으며 노닐 거야.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 비록 뱃속에 어린아이가 있다지만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 어찌 편안히 장성하길 바라겠느냐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 황대사를 읊으며 흐느끼노라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 피눈물 슬픈 소리를 삼키노라

병약한 어미를 닮은 아이들은 일찍 요절했으니 허난설헌의 팔자도 참으로 기구하다. 게다가 배속에 있던 아이까지 죽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러한 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일찍 죽은 것 같다. 남편은 무심하지, 의지가 되었던 아이들은 매일 골골거리다 황천을 건넜지. 무슨 살 낙이 있었을까?

허난설헌과 같은 출중한 시인이 요절을 하다 보니 어떤 이들은 그의 남편 김성립을 매우 미워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도 조선시대 ‘안 맞아도 끼워 놓는 결혼제도’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란 말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허난설헌이 아무리 훌륭한들 눈에 차겠느냐는 것이다. 그에게 난설헌은 이상형이 아니었던 것. 적당히 애교 있고, 적당히 남편을 굴릴 줄도 하는 요부가 어울렸을 수도 있다.

암튼 지나간 고인의 아름다운 자취를 살핀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귀한 시간이다. ‘난 왜?’하는 생각도 들지만 허난설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편안히 잠자리에 든다.

여기서 ‘하필이면’이란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하필(何必)’이란 말을 보면 ‘어찌 꼭’이란 말이다. 어찌 꼭 그녀의 운명은 그래야만 했을까?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서 그녀가 천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천한 집의 종으로 태어나면 글 한 자 배울 수 없었을 테니 제 아무리 천재적 능력을 타고 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난설헌 시집     허난설헌     일본인이 본, 허난설헌 한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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