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하이쿠로 명명하고 완성시킨 이래, 일본인은 오늘날 음절수 하나 파괴하지 않고 국민의 시로 다지더니 급기야 세계의 시로 승화시켜 놓았다. 1999년이 하이쿠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다.
하이쿠는 일본에서 태어난 독특한 문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가 그것이다. 하이쿠는 5, 7, 5의 운율을 지닌 한 줄짜리 시(간혹 삼행으로 나눠 쓰기도 한다)로 오랜 전통이 있고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회자되는 대중 시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하이쿠를 오늘날까지 사랑함으로써 일본어를 갈고닦는다. 사실 하이쿠는 다작하는 그 가운데 수작이 생겨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유명한 하이쿠 작가들의 작품도 수만점 중에서 가려낸 수작들이 전해지는 것이다.
일본에는 현재 800에서 1000개에 가까운 하이쿠 결사(結社)가 있다. 결사란 공동의 문학적 취지하에 하이쿠잡지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주재자(主宰者)를 중심으로 모이는 하이쿠 집단을 가리킨다. 최근 들어서는 문화센터와 유사한 하이쿠 교실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 교실들은 하이쿠를 즐기는 사교모임으로도 한몫을 하고 있다. 다른 취미활동보다 하이쿠는 서민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는 면에서 더욱 흡수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 위성방송에는 ‘하이쿠 왕국’이라는 정규프로그램이 있어 하이쿠가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케 한다. 근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가장 세계화된 일본의 정신유산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몇 사람의 하이쿠시인이 모여 음행(吟行)(하이쿠를 읊기 위해 경치가 좋은 곳이나 명승고적을 찾아 걸어 다니는 것)을 한 뒤, 한자리에 모여앉아 완성한 작품을 익명으로 제출한다. 이 작품들을 익명인 채로 벽에다 붙여 놓으면, 각자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빨간 점을 붙이며 왜 좋은지 이유를 설명한다. 한 차례 평이 끝나면 드디어 작가를 공개하게 되는데 가장 많은 점을 얻은 사람이 그날의 승자가 된다. 각자의 견해가 다양하겠지만, “벌레“라고만 해도 가을밤을 연상할 수 있는 미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며 그러한 공동의 미의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놀이인 것이다.
뿌리가 일본 나라(奈良 710~84)시대 와카(和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이쿠는 오랜 세월을 건너 지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애호가가 1000만명에 이르고, 전문월간지만 8개, 동인지는 800여개가 나온다니 말 그대로 ‘하이쿠의 시대’다. 일본 밖에서도 문학적으로는 릴케에서 옥타비오 파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이쿠는 미국초등학교교과서에도 실렸고 대중적으로는 뉴욕타임스가 최근 뉴요커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할 정도로 유행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적지 않다. 알렌 긴스버그나 게리 스나이더 같은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 그렇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체슬라브 밀로즈는 하이쿠 애독자였다. 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해도 하이쿠적인 시인 역시 많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대표적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서양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 중에 하이쿠를 자주 인용한다.
라후카디오·하안(고이즈미 야쿠모)이 구미인으로는 처음으로 하이쿠의 매력을 발견한 것이 19세기 종반이다.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의 폴·루이·크슈가 자작을 정리한 구집을 출판하여 하이쿠 붐을 야기하고 있다. 즉 하이쿠의 국제화에는 벌써 100년의 역사가 있다. 1970년대에 하이쿠가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국제화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지금은 약 50국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각의 모국어나 영어로 하이쿠를 읊으며 즐기고 있다. 하이쿠는 유럽 등 서구에는 이미 1910년대 에즈라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즘이 일어났을 때 소개되었다. 하이쿠가 오늘날 일본의 국민 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이쿠라는 식탁에 멋진 세 다리가 된 세 명의 위대한 하이쿠 시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쇼(松尾芭蕉·1644~1694), 부손(謝蕪村·1716~17 83), 잇사(小林~茶·1763-1827)가 바로 그들로 이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는 하이쿠라는 식탁을 마련해 놓았다.
ㆍ아래 명기한 곳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편집함.
ㆍ国際俳句交流協会 ㆍ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 류시화 ㆍ동아일보 매거진(신동아) / 2000년 6월호 ㆍ일본 문화의 힘-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 동아시아 펴냄 ㆍ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감상법 / 유옥희 계명대학교 일문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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