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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Read.nhn?articleid=139&sc=e0d43b1c0e412a9a1e&query=%C7%D1%B1%B9%C7%CF%C0%CC%C4%ED&clubid=10867125
17음절로 표현하는 시의 세계 / 김정례
1. 함축과 생략의 의미
근대 서구의 대표적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는 5·7·5의 17음절로 된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에 대한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는 또 자신의 시에서도 하이쿠적 기법을 활용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근대 이후 하이쿠는 일본 문화 중에서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졌을뿐더러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이쿠가 그 발생의 시기를 거쳐 하나의 문예 형식으로 자리를 확고히 다진 지 3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 일본에서 하이쿠를 짓는 인구는 5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심지어는 1,000만 명이라고도 한다. 이 숫자는 하이쿠를 읽는 독자가 아니라 하이쿠를 쓰는 사람을 말한다. 1,000만 명이라면 일본 인구가 1억 3천만 명 정도이므로 13명 중 한 명은 하이쿠를 쓴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하이쿠는 매우 대중적인 문예이다. 텔레비전의 하이쿠 프로그램에는 유명한 하이쿠 시인과 더불어 자신이 지은 하이쿠를 선뵈는 영화 배우나 탤런트, 혹은 코미디언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그런 연예인들은 본격적으로 하이쿠를 배웠을 뿐 아니라 작품 수준도 상당한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하이쿠는 일본 문화론과 결부되어 인용되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의『기호의 제국(L'empaire des signs)』이어령의『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그 대표적인 예다. 많은 외국인은 하이쿠를 통해 일본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인 또한 하이쿠는 일본 문화의 가장 응축된 한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다른 나라와는 다른 매우 특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일본인은, 자신들의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독특한 짧은 시형 탓에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하이쿠를 외국인이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것에 매우 놀라워하는 한편 자부심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하이쿠의 어떤 면이 일본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면서 17자의 시 형식에 자신의 생각을 담기에 열중하는 많은 일본인, 그 대중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그 실태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나아가서 하이쿠의 국제화 양상 등에 그 문예적 특성과 더불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2. 하이쿠 문예의 형식적 특질-정형, 기고, 기레지 Ａ. 정형(定型) － 5·7·5의 음률과 17음의 세계
이 하이쿠는 일본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작품이다. 알파벳 표기를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古池や( HU·RU·I·KE·YA : 5음) / かわつ飛びこむ(KA·WA·ZU·TO·BI·KO·MU : 7음) / 水のおど(MI·ZU·NO·O·TO : 5음)의 음률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어의 17음이란 어느 정도의 길이일까. 일자일음(一字一音)으로 한자를 읽는 우리 나라 식으로 보자면, 위에 인용한 하이쿠는 古池や(3음) / かわつ飛びこむ(5음) / 水のおど(4음) 모두 12음처럼 보이지만 일본어로는 위에서 본 것처럼 17음이 된다 일반적으로 일본어의 17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만 17음보다는 적다고 볼 수 있다. 대개 일본어 17자의 하이쿠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10자 내외가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인 것이다. 하이쿠의 17음은 일본어로서도 시 형식의 합리적인 범위에서 최소형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이쿠의 대표적인 17음으로 표현하는 세계, 그 시 형식의 짧음에 있다. 일본인들은 이 17음을 읊조려보면 간결하게 꽉 조여져 있으면서 의외로 질리게 하지 않으며,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갖는 완벽한 시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5·7·이거나 7·5 음률이다. 말하자면 이 음률은 일본인들이 기억하기 쉬운 형태인 것이다. 기억하기 쉽다는 것은 암송(暗誦)을 유발하고, 그 암송성은 하이쿠를 읊조리는 즐거움과 그것을 귀로 듣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한편, 나아가서는 구송성(口誦性)을 유발한다. 하이쿠를 짓는 주된 방법 중의 하나로 구카이(句會)가 있는데, 구카이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이쿠를 짓고 완성된 작품을 큰소리로 읽어내린다. 하이쿠를 잘 짓기 위해서는 구카이에 참석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여기에서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구송성을 즐긴다는 뜻도 있다. 구카이의 즐거움은 보통 인쇄물로 보는 하이쿠를 큰소리로 읽고, 또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을 귀로 듣는 즐거움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하이쿠가 구카이에서 우수 작품으로 선발되어 큰소리로 읽혀질 때, 크게 감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언어에 의한 음악성이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근대 이전의 문학이 얼마나 음악과 깊게 관련되어 있었던가. 우리의 시조만 보더라도 노래처럼 불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소설이나 시 등 모든 문예 작품은 활자화된 것을 눈으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할 때, 하이쿠가 갖는 이와 같은 암송성과 구송성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짧은 시형 탓에 누구든 하이쿠 짓기에 한번 도전해 보고 읊조려 볼 수 있다는 것도 대중적 유인력의 하나일 것이다. Ｂ.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 기고(季語)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기고가 들어 있으므로 반드시 어느 계절인가가 작품 속에 그려져 있다. 위의 해묵은 연못이여라는 하이쿠에서는 기고가 '개구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구리는 봄에도 울고 여름에도 우는데, 그렇다면 이 하이쿠는 어느 계절을 읊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구리'는 봄을 나타낸다. 개구리는 봄이 번식기이고 따라서 그만큼 많이 울고 활동하는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쿠 속에 '개구리'가 읊어졌으면 그 개구리는 당연히 봄의 개구리라니, 이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하이쿠 기고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계절을 나타내는 모든 단어가 기고인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기고는 시인들에게 읊어져서 인정받은 단어이어야 한다. 기고는 첫째로 '봄바람(春の風)'이라든가 '여름 산(夏の山)' 등 단어 자체에 계절이 들어가 있는 경우, 둘째로 '더위(暑さ)'라든가 '추위(寒さ)' 등 어느 계절과 밀접하게 관련된 경우, 셋째로 위에 인용한 '개구리'처럼 어느 계절을 나타내는지 약속하여 쓰는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기고에서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이 세 번째 경우인데, 예컨데 하이쿠에 '달(月)'이 들어 있으면 그 달은 가을밤의 달을 말하고, 또 '꽃'이라는 말은 '벚꽃'을 가리킨다. 하이쿠를 짓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그 달이 가을밤의 달이며 그 꽃이 벚꽃이라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기고의 약속인 것이다. 한편 각각의 기고는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비(雨)의 경우를 보면 봄비(春雨, 하루사메, 봄), 장마비(五月雨, 사미다레, 여름), 초겨울비(時雨, 시구레, 겨울)로 나누어서 부르는데 각각의 비에는 독특한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다. 봄비(春雨)는 젖을 듯 말 듯 언제까지나 끊임없이 내리는 감미로운 비의 이미지이다. 봄비가 때로는 거세게 내리기도 하지만 하이쿠 속에 '하루사메'라고 읊어지면 그 비는 절대로 거센 비가 아니다. 일본 근세 하이쿠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부손(與謝蕪村, 1718∼1783)은 그 봄비 내리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많은 일본인은 봄비란 이런 것이라고 공감하는 것이리라. 그런가 하면, 장마비(五月雨)는 오랫동안 내리는 비의 음울한 이미지, 초겨울비(時雨)는 갑자기 내리는 비에서 무상유전(無常流轉)의 한탄스러움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처럼 기고 속에는 옛 시인들에 의해 발간된 계절감이 연륜처럼 각인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자와 독자를 잇는 공통의 기본적 파이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기고를 모두 모아 '세시기(歲時記)'로 정리해 놓고 있다. 기고는 하이쿠 이전의 일본 전통 시가인 와카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각각의 기고는 역사적으로 긴 것이 있고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것이 있다. 하이쿠를 짓는 사람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세시기'이며, 하이쿠에 관심 있는 독자가 세시기를 펼쳐놓고 각각의 기고를 읊은 하이쿠들을 탐독하는 풍격은 결코 낯설지 않다. Ｃ. 시적 흐름을 끊는 단어, 기레지(切字) 세 번째 약속은 하이쿠에 기레지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레지란 글자 그대로 끊는(切) 글자(, 단어)라는 의미이다. 기레지는 하이쿠 속에서 그 시적 흐름을 강하게 끊음으로써 하이쿠의 시적 세계가 넓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앞의 해묵은 연못이여'의 하이쿠에서는 '후리이케야(古池や)'의 야(や)'가 기레지이다. 이 작품의 경우 '해묵은 연못이여'라고 하지 않고, '해묵은 연못에'라고 했다면 어떨까. 의미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해묵은 연못에'라고 했다면, 해묵은 연못에 퐁당 뛰어드는 개구리의 풍경만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해묵은 연못이여'라고 하면 독자는 '이여'에서 일단 한번 멈추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물소리'가 난 뒤 또 다시 찾아드는 정적 속의 해묵은 연못의 정취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단순히 연못으로 뛰어드는 '개구리'의 사생도 아니고 '오래된 연못'의 서경도 아니다. 담담하게 표현된 이 하이쿠의 세계는 '해묵은 연못이여'라고 함으로써 주변의 경치가 오랜된 연못이라는 틀에 한정된다. 또 '뛰어드는 물소리'라고 하여 '개구리'의 모습이나 움직임보다는 오히려 물소리에 초점이 집중된다. 그리하여 이 하이쿠를 다 읽고 난 후, 독자는 처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연못에 조용하게 퍼지는 파문을 보게 되리라. 기고인 '개구리'가 나타내는 계절 감각보다는 작품 전체가 표현하는 세계에 훨씬 무게를 두는 것이다. 즉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묘사한 것 이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레지는 시의 흐름을 끊어 멈추게 함으로써 시가 산문처럼 단조롭게 읽혀지는 것을 막는다. 기레지는 해당하는 단어가 몇 개 있으나 꼭 그 단어를 넣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상으로 절단이 되어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하여 17음의 짧은 시 하이쿠가 자칫 무슨 구호나 표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을 막는다고 볼 수 있다. 3. 하이쿠 문예의 성립 배경과 시대적 변천 그렇다면 하이쿠 문예는 언제부터 시작었는가. 하이쿠(俳句)란 말은 근대 이후에 일반화된 명칭이다. 하이쿠란 하이카이(俳諧)에서부터 출발하는데, 하이카이라는 문예 장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단지 하이카이란 단어가 '골계(骨稽)', 즉 '익살'이라는 뜻의 중국어에서 온 것이며 일본에서 이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일본의 시가집인『古今和歌集』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시가집에 실린 57수의 '하이카이카(俳諧歌)'라는 시가는 정통 와카에 비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수준의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하이카이가 문예 형식의 하나로 성립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에 들어서의 일이다. 일본의 중세시대인 15세기 말 렌가(連歌, 5·7·5의 長句와 7·7의 短句를 2인 이상의 사람이 앞 구에 이어서 읊어 36수나 100수에서 끝내는 일본 전통시의 한 형태)중 정통이 아닌 것을 하이카이의 렌가, 즉 하이카이라고 했다. 따라서 하이쿠는 그 문예의 출발부터 이미 패러디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렌가에서 첫 번째 구인 훗쿠(發口)는 두 번째 이하의 구들과는 달리 5·7·5의 17자를 정형으로 하여, 읊을 당시의 계절을 나타내는 기고가 들어 있어야 하며, 내용을 안에서 끊는 역할을 하는 기레지에 의해 하나의 구로서 완결성이 요구되었다. 렌가에서 성립한 이러한 원칙은 하이카이에 그대로 답습되고, 근대 이후의 하이쿠에도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렌가의 여기(餘技)로 시작된 하이카이는 근세시대인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본 운문문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이 역할을 해낸 사람이 마츠오 바쇼였다.
바쇼는 1689년 '오쿠로 가는 작은 길(奧のほそ道)'의 여행중에 들른 산사에서 이런 하이쿠를 읊었다. 한여름 매미들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인기척 하나 없는 산사의 정적을 겹겹이 겹쳐진 주변의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 소리라는 대상의 파악방법과 표현방법으로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지향해갔다. 이 하이쿠의 배경이 된 동북지방의 산사는 바쇼가 읊은 이 하이쿠의 정취에 감동하여 찾아오는 관광객이 매년 200만 명이나 될 만큼 유명하다. 바쇼 이후 부손 등에 의해 그의 시적 세계가 계승되기도 했으나, 예술적인 작품은 그리 많이 않은 상태에서 근대를 맞게 된다. 4. 근대 하이쿠의 혁신 그렇다면 하이쿠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쓰는 '하이쿠'란 '훗쿠'와 같은 의미의 용어로 일본의 근대 초기인 1890년대에 마사오가 시키(正岡子規, 1867∼1902)가 하이카이를 특히 훗쿠 중심으로 개혁한 이후의 것을 가리킨다. 시키는 하이카이를 근대 예술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시키는 하이카이 중에서 특히 훗쿠(하이카이의 첫 번째 구)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소설이나 희곡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그는 하이쿠라고 개칭된 훗쿠는 특정한 폐쇄된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지적인 놀이'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향하여 개방된 진실 탐험의 길임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표현방법으로서는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서 사실적 태도로 사물을 접하고 표현하는 '사생(寫生)'을 택하게 된다. 이로써 하이쿠는 근대 예술로의 질적 전환의 길을 맞은 것이다. 시키는 어느 광경을 있는 그대로 즉흥적으로 읊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사생'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된 그의 하이쿠론은 근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문 ,닛본(日本)과 자신이 1897년 1월 창간한 잡지《호토도기스》를 하이쿠 혁신의 거점으로 삼아 추진하였다.
오랜 병상 생활을 하던 시키가 젊은 나이에 죽은 후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 1874∼1959)가 《호토도기스》를 맡고, 헤키고도(碧梧桐, 1873∼1937)가 <닛폰>을 맡게 되면서 시키의 정신은 양분되어 간다. 헤키고도가 시키의 사실(寫實) 정신을 계승해 간 반면, 교시는 시키의 부손(蕪村)적 요소를 계승해간다. 이후 교시는 하이쿠란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읊는 것. 즉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에 의해 생기는 자연계의 현상과 거기에 동반하는 인간계의 현상을 읊는 것'이라는 '화조풍월설'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교시의 하이쿠와 달리 한편에서는 기고가 없는 하이쿠, 기레지가 없는 하이쿠, 5·7￣음률에 구애받지 않는 하이쿠 등이 주장되었으나, 당시 하이쿠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교시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그의 하이쿠론은 일세를 풍미했다. 한편 1946년 11월 구와바라 다케오는「제2예술-현대 하이쿠에 대해」라는 글에서 일본의 메이지 이래 소설이 형편없는 이유의 하나는 작가의 사상적·사회적 무자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그러한 안이한 창작태도의 유력한 모델이 하이카이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현대 하이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근대 예술이 작자와 독자가 같은 그룹 안에 존재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 성립하는데 반해, 현대 하이쿠는 작자와 독자가 동일 그룹에 있어야 하므로 각 하이쿠 시인들은 동호인 그룹, 즉 '결사'를 만들어 결사 안에서만 통용되는 기준으로 작품을 쓰고 비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당대의 하이쿠 시인 미즈와라 슈에이가 "하이쿠는 자신이 작품을 지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이쿠란 그런 것이라고 수긍했을 뿐 아니라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예술작품 자체(하이쿠 한 수)로 그 작가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즉 하이쿠 한 수만으로 그 작가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일류 대가와 초보자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생 그 자체가 근대화하고 있는 이상, 지금의 현실적 인생을 하이쿠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예술이라는 말을 굳이 쓴다면 '제2예술'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쿠 시인의 안이한 창작태도와 작가로서의 사상적 무자각을 예리하게 지적한 구와바라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하이쿠라는 문예 장르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 의미 자체를 의심케 했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하이쿠를 짓는 인구도 매우 많아졌을 뿐 아니라 하이쿠에 대한 인식 또한 매우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5. 공동 사회적 요소 - 결사와 구카이 하이쿠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시를 이어가며 읊었던, 말하자면 공동 창작의 성격을 띤 렌가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다. 이 전통의 일면은 하이쿠에 이어지고 있다. 하이쿠 창작 선생에 해당하는 주재자(主宰者)를 중심으로 결사(結社)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 결사에서 주최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하이쿠를 짓는 구카이를 연다. 그러면 구카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구카이의 날짜가 정해지면 구카이에서 지을 하이쿠의 기고인 겐다이(謙題)가 며칠 전에 발표된다. 참가자는 이 기고가 들어있는 하이쿠를 지어 가지고 간다. 혹은 당일 즉석에서 세키다이(席題)가 발표되기도 한다. 장소는 개인 집이나 공원, 혹은 신사나 절 등의 한 켠을 빌린다. 만약 '모란꽃'이 그 날의 소재이면 모란꽃이란 단어를 넣어 모란꽃과 관련된 하이쿠를 3수 내지 5수 종이에 무기명으로 적어 정해진 시각까지 투표함처럼 생긴 상자에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 각자 회람하면서 정해진 숫자만큼 작품을 각자 선별하여 선자(選者)의 이름을 써서 간사 역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낸다. 선발된 작품이 낭독되면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작품이 낭독되면 자기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때 참가자의 이름을 따로 적어놓고 점수를 매겨간다. 특히 지도자 격에 해당하는 주재자나 초대한 하이쿠 시인이 있을 경우 그가 선택한 작품은 한층 큰 소리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전체 득점표를 점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 득점표는 각자 알아서 보고 판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로써 구카이는 끝난다. 이 때 입선한 하이쿠에 대해 비평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구카이에 같이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선구(選句)되었는가 아닌가가 절대적일 뿐, 작품의 좋고 나쁨은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도록 한다. 한편 하이쿠 짓기를 목적으로 교외나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것을 긴코(吟行)라고 한다. 하이쿠 짓기와 그 향유에 있어 구카이나 긴코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하이쿠는 읽고 감상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작품을 창작하는 데 훨씬 많은 관심이 모아지는 문학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 발행되는 하이쿠 잡지는 종합지와 주재자가 자신의 경향으로 주도하는 결사 잡지로 나눌 수가 있다. 하이쿠에 관한 종합잡지로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월간지는 현재 적어도 5개 이상이다. 이 5개 잡지의 총부수는 약 10만부 정도이며 각각의 하이쿠 결사 중에서 잡지를 출간하고 있는 결사는 약 700개 정도라고 한다. 하이쿠 결사 잡지의 회원이 되는 데는 하이쿠에 대해 상당 수준의 훈련이 필요하다. 전통 있는 결사는 회원수가 만 명 이상인 경우도 있고, 천 명 내지 2천 명 혹은 그보다 적은 경우도 있다. 대개 회원들은 회비를 내고 잡지에 매월 자신이 지은 하이쿠를 투고한다. 그리고 주재자의 선(選)을 받아 거기에 자신의 하이쿠가 몇 수 실렸는가에 가장 관심을 갖는다. 또 그들이 읽는 하이쿠는 자신의 결사 잡지에 실려 있는 것만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하이쿠 시집이 수만 혹은 수십만 부 팔리는 일은 거의 없다. 6. 일상을 노래하는 시의 세계 근대에 들어 하이쿠를 혁신했던 마사오카 시키는 하이쿠, 장기, 샤미센(3줄로 된 일본의 전통 현악기)과 와카, 바둑, 거문고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 일본 전통시가인 렌가나 와카는 완전히 고전적인 감각 위에서 성립한 예술로서 일본 시가의 정통적인 흐름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들 시에는 원칙적으로 일본 고유의 아름답고 고상한 특정 시어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렌가나 와카의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용어나 표현 모두 잔잔함과 조용함이었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는 이들 시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하이쿠는 그 출발부터가 해학적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서민의 문예였다. 따라서 하이쿠에서는 한자어나 속어, 외래어 등을 사용하여 새로움을 읊어갔다. 따라서 주변의 일산 모든 것이 하이쿠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20년대에 읊어지기 시작해 외래어 기고로서 성공한 '메이데이(노동절)'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런 하이쿠가 있다.
이와 같이 하이쿠 속에는 일본인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다.
7. 하이쿠의 국제화
이 말은 미국의 하이쿠 협회에서 내린 하이쿠의 정의다. 현재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하이쿠(HAIKU) 창작을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하이쿠 잡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네 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와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하이쿠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또 중국에선즌 한배(漢俳)라는 이름으로 중국 문화 속에 정착해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하이쿠가 동양의 한 이색적인 시 형태로 소개되고 수용되는 단계를 벗어나 각 나라에서 각국의 언어로 읊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이쿠가 이렇게 세계로 퍼져갈 수 있었던 뿌리는 근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지만, 본격적인 움직임은 메이지 유신(1868) 이후이다. 유신을 단행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메이지 정부는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서구 선진국으로부터 많은 외국인을 초빙했다. 그 외국인들 중에는 일본 문학 중에서 특히 하이쿠의 독특함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하이쿠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보도록 하자.
이 말들을 보면 서양 사람들에게 하이쿠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다. 이후 서양의 정치가들조차도 일본에 와서 강연을 할 때면 바쇼나 부손의 하이쿠 한 수를 인용하여 자신이 일본 문화에 관심 있음을 상징적으로 내보인다. 그들은 이 하이쿠 인용이 그리고 인용한 하이쿠에 대해 덧붙인 자신의 의견 한마디가 얼마나 일본인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하이쿠는 이처럼 일본과 외국을 잇는 하나의 파이프 역할을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달'하면 가을밤의 달을 가리키고, '개구리'하면 당연히 봄에 우는 '개구리'라고 약속되어 있는 것이 하이쿠의 세계이다. 즉 창작자와 독자 사이에 형성된 공감의 좌(座)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일본인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하이쿠를 외국인이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신들과 그 외국인 사이에 무언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리라. 이로써 우리 편과 남을 철저히 구분하는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서 그 외국인은 이미 완전한 남은 아니게 된다. 일본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생략과 암시가 매우 많은 탓에 비커뮤니케이션적인 언어로 통한다. 생략된 부분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들어야 한다. 일일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일본 사회에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국제 사회 속에서 일원이 되어 일을 할 경우 이점이 자신들이 갖는 난점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일본인은 공감한다. 그런가 하면 하이쿠는 그 극도의 짧은 시형식 탓에 '생략의 문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이쿠 시인은 이미 창작 단계에서도 의미 전달에 별 관심이 없다. 하이쿠 시인이 하나 둘 명확한 이미지를 던지면, 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생략의 틈새를 보충하고 의미해석 영역을 초월하여 체험적으로 그 작품 세계를 감상한다. 이처럼 하이쿠는 일본어의 특성, 그리고 일본어로 빚어내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가장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문예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많은 외국인으로 하여금 하이쿠에 관심을 갖게 하고, 하이쿠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일본 문화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여기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한일 양국 문화교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우리말 큰사전』(1992)을 보면 중국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또 서양의 소네트나 랩소디 항목은 있으나 하이쿠 항목은 없다. 또 일본의 대표적인 사전『고지엔(廣辭苑)』(1999)이나 문예용어사전에는 우리나라의 '시조(時調)' 항목이 들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은 일본과 한국의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수준을 아는 데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 21세기를 맞아 보다 폭넓은 한일 문화교류를 앞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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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花鳥諷詠(かちょうふうえい) |
 [동영상] 대중문화로서의 하이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