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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
도력 높은 스님 가을 들판에서 똥 누고 계신다 - 부손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 타다토모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반딧불이 불을 비춰 주네 - 오에마루 첫눈이여, 글자를 쓰면 사라지고 쓰면 사라지고 - 치요니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내가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 쿄로쿠 나비가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실망한 것처럼 - 이싸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에 앉은 파리를 쫓아 보냈네 - 이싸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아래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 이싸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 이싸 옛날에 내가 떠난 집 아직도 그 곳에 벚꽃이 피겠지? - 이싸 늙은 개가 지렁이 울음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있네 - 이싸 첫눈이 내린다. 수선화 줄기가 휘어질 만큼 - 바쇼 봄의 첫날, 나는 줄곧 가을의 끝을 생각하네 - 바쇼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허물은 - 바쇼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 소칸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 기가쿠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 - 사초 비가 내리는 날이면 허수아비도 사람처럼 보이네 - 세이비 새벽이 밝아오면 반딧불도 한낱 벌레일 뿐! - 아온 땔감으로 쓰려고 잘라다 놓은 나무에 싹이 돋았네 - 본초 저 나비, 무슨 꿈을 꾸길래 날개를 파닥거릴까? - 치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 버렸네 - 시메이 밤은 길고 나는 누워서 천년 후를 생각하네 - 시키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은 두고 갔구나 - 료칸 꺾어도 후회가 되고 꺾지 않아도 후회가 되는 제비꽃 - 나오조 ▒ ▒ ▒ ▒ ▒ ▒ ▒ ▒ ▒ ▒ ▒ ▒ ▒ ▒ 문화일보 : 17字에 응축된 ‘일본의 정서’ 5-7-5, 불과 17자의 음절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俳句). 그 뿌리가 일본 나라(奈良 710~84)시대 와카(和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이쿠는 오랜 세월을 건너 지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애호가가 1000만명에 이르고, 전문월간지만 8개, 동인지는 800여개가 나온다니 말 그대로 ‘하이쿠의 시대’다. 일본밖에서도 문학적으로는 릴케에서 옥타비오 파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대중적으로는 뉴욕타임스가 최근 뉴요커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할 정도로 유행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이쿠가 몇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로는 ‘침묵과 여백의 미’를 꼽을 수 있다. 무한대로 팽창한 매체들이 쉬지않고 말들을 겹쳐 쏟아내고, 개인들 역시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익숙한 이 시대, 하지만 사람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에서 돌아와 홀로 되면 자신이 내뱉은 많은 말만큼 더 외로워지는 현대인들에겐 일상에서 사라져버린 침묵와 응축의 미가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순간속에 영원을 담는다’는 ‘감동적인 침묵을 만들어내는 언어장치’로 표현되는 하이쿠에 대한 대중적 교양 입문서이다. 현재 일본 메이카이(明海)대학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가 하이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펴낸 아주 쉬운 교양서이다. 책은 하이쿠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지식에서 출발해 하이쿠의 역사와 하이쿠의 특징을 살펴본뒤, 하이쿠 시단을 이끈, 걸출한 시인인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으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는 바쇼의 하이쿠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를 보자. 저자는 “봄이 되어 땅속에서 나온 개구리가 낡고 오래된 연못에 뛰어들어 물소리가 난다고 하는 이 단순한 구가 왜 많은 사람이 읊는 명구가 됐을까”라고 질문한뒤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봄의 이미지를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개구리가 물 속에 뛰어드는 소리를 통해 표현한 새로움을 꼽는다. 그리고 실제로 개구리는 물속에 들어갈 때 미글미끌한 피부와 원추형의 체형이 수면에 닿을 때의 충격을 줄여주기 때문에 물결이 일지 않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며 바쇼가 읊은 개구리가 물속에 뛰어드는 소리는 결국 소리 없는 소리요, 마음의 귀로 들은 침묵의 소리로 이 침묵이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안긴다고 풀이했다. 또 오래된 연못은 세상사람들과 동떨어져 한적한 생활을 보내는 초암(草庵)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떨어진 곳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의 고동을 마음의 귀로 듣고, 소리없는 소리를 통해 생명의 발동(發動)을 포착한 것이 뛰어나다”고 해석했다. 최현미 기자 세계일보 :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日本의 '하이쿠' "떨어진 꽃잎 나뭇가지로 되돌아가 바라보니 나비였네!”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이미지즘 운동을 전개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일본 에도시대의 ‘하이쿠(俳句)’ 한 편이다. 봄바람에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가 했더니 지는 꽃잎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자세히 보니 나비가 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내용이다. 하이쿠란 이처럼 계절을 드러내는 서정과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잘 버무려진 일본의 전통적인 시 형식으로, 불과 17자로 마무리되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다. 일문학자 전이정씨가 펴낸 하이쿠 이야기 ‘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창비)는 하이쿠 소개와 유명 작품 감상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전씨는 “하이쿠야말로 일본인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예”라며 “하이쿠의 시어는 가슴에 쌓이고 쌓여 가득 채워진 후 새어나온 침묵을 담아내기 때문에 표현된 말의 주변에 표현되지 않는 무수한 말이 전해져온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관념의 과잉이 자주 드러나는 현대시에서 하이쿠의 간결한 여백의 미학은 국내 시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만하다. 하이쿠에는 17음의 정형을 유지하고, 계절을 상징하는 시어를 포함시켜야 하며, 의미를 끊어주는 부분이 반드시 시에 내포돼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러한 기본 약속 아래 짧은 구절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예술이 탄생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하이쿠는 누구라도 쉽게 지을 수 있는 형식으로 일본에서 널리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하이쿠에도 명인이 따로 있다. 일본 하이쿠의 역사를 이끌어간 5명의 시인들을 지은이는 자세하게 소개하며 그들의 대표작들 설명도 곁들인다. “떠나는 나에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 두 개.” 하이쿠 혁신운동을 펼쳤지만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사오카 시키(正罔子規·1867∼1902)의 작품.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와의 이별을 서러워하는 심정이 담겼다. 각자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뜩이나 쓸쓸한 가을이 두 개라는 것인데,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명편 중의 하나다. 그런가 하면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1874∼1959)의 하이쿠 “그대 한마디 나 한마디 가을 깊어가는구나”는 적요 속에서 한두 마디씩 뜸하게 주고받는 두 사람의 격조 있는 대화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가을과 함께 하이쿠처럼 압축된 두 사람의 마음 나눔이 깊다. “끌려가는 소가 사거리에서 지그시 올려다본, 가을 하늘.” 가와히가시 헤키고토(河東碧梧桐·1873∼1937)의 이 구절도 쓸쓸한 가을의 정서를 단박에 포착해버린다.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올려다보는 하늘도 소중하기 이를 데 없을 터인데, 거기에다 그 하늘이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라니!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1763∼1827)는 “가을 바람에 걸어서 도망가는 반딧불이여”라고 가을에 밀려나는 반딧불이를 통해 계절의 전환을 재치 있게 묘사하기도 한다. “가는 봄이여, 새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이.” “정적이여, 바위를 뚫고 스며드는 매미 소리.” “방랑에 병들어, 꿈은 겨울 들녘을 헤맨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하이쿠 시대를 연 에도시대의 명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94)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말장난에 불과했던 초기 하이쿠에 자연과 인생의 의미를 담아 심오하게 그려낸 시인으로 유명하다. 신경림 시인은 이 책의 발문에서 “정말 좋은 시는 무언가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을 담고 있어서 읽으면 사물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고, 읽어서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림처럼 떠오르는 그런 것”이라며 “하이쿠는 한 줄의 시구 속에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생동하는 이미지를 담아내면서 좋은 시의 생명을 지키려 애써왔다”고 평가한다. 조용호 기자 출처 :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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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 류시화 |
 俳句 (하이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