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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대상 12회 / 윤금초 - ◀ 원문보기 클릭 ▶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제정 년도 : 1982년
중앙시조대상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0년 이상인 시조시인,
중앙시조시인상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 대상 1993년주몽의 하늘 / 윤금초그리움도 한 시름도 潑墨으로 번지는 시간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흰 適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아,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왕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 오고 막다른 벼랑에 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 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 천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四神圖 布置하는, 광활한 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촌 평3 여부를 떠나 그저 글쓰기에 불과하다. 여기서 글쓰기라는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조는 글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저따위를 시조라 뽑았으니 중앙시조대상이 어느 동네 상인지 모르겠다. 시조는커녕 시도 될 수 없기에 평할 수 없다. 평을 요구한다면 평자를 모독하는 것이다. 시조가 저리 잡다하고 수준 또한 저렇단 말인가?시조를 망가트리지 못해 안달하던 무리들이 온갖 잡종을 생산하더니, 드디어 옴니버스시조란 괴물이 출현하고 말았다. 단시조도 제대로 짓지 못하는 주제에, 홑시조, 단시조, 연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등 모든 형식을 망라하는 시조를 짓겠다니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가람 이병기가 자유시 작법은 도입한 이래, 시조도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도저히 시조라할 수 없는 현대시조는 고시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매몰차게 시조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조운은 자유시처럼 행갈이하여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은상은 단장시조와 양장시조를 만들어 시조를 더럽혔다. 여기에 작자는 이에 뒤질세라 잡다한 옴니버스시조라는 것을 등장시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시조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렸으니 도대체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시조를 찾는단 말인가?민족문화란 계승되는 것이지 시대에 따라 변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람 이병기를 비롯하여 시조를 망가트린 작자들이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앞잡이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시단서도 시는 짧아야 한다는데, 본디 짧은 시조를 자유시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장황하게 수다를 떨더니 이제는 아예 옴니버스시조라는 것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상기의 것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중앙시조대상을 수상 받을 만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필자는 윤금초에게 과연 시조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우리 민족은 정신적 지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 여파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으니 시조를 부정하고 망가트리는 행위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일제 치하 일본을 찬양했던 반민족문인들이 민족의 혼이라해도 과연이 아닌 3.1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 받고, 민족의 시조에 대표적 반민족문인 최남선의 호를 따서 육당시조문학상이 제정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어찌 한치 앞도 모르는가?자신의 어줍잖은 행위가 시조라는 아름드리 솔나무를 갈아먹는 송충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시조를 지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자유시를 쓸 것이지 구차하게 시조 주위를 맴돌며 되니 안되니 헛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자신들 능력에 맞게 본질을 변형시켜 놓고 마치 발전인양 떠벌리고 있는 무리와, 글자 수만 맞추면 시조가 되는 줄 아는 엉터리들이 시조라고 내놓은 것은 차라리 시조의 사망통지서다. 시조가 아닌 것이 국내 최대의 권위를 자랑하는 중앙시조대상에 선정되고, 얼치기와 들치기들이 다만 밥그릇 수를 채웠다고 시조의 대가로 군림하고 있으니 시조의 앞날은 실로 참담하고 암울하다 하겠다. 시조가 무엇인지 아는가?시조가 무엇인지 알고나 떠드는가?면면히 흘러가야 하는 시조에게 행여 걸림돌은 아닌가 살펴 볼 일이다. 제대로 된 단시조 하나 짓지 못하는 주제에 시조가 이렇네 저렇네 떠들며 시조의 발목을 걸어 넘어트리지 말고, 시조를 짓기 전에, 지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리고 시조라 하기 전에, 두루두루 살펴 볼 일이다.자칭이건 타칭이건 소위 지조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조차도 시조가 무엇인지 모른다. 시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외한들이 시조계에 있는 한, 시조는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시조가 무엇인지 각인 시키고자 그 유명한 황진이 시조 6수에서 한 수를 내려 놓는다.
동지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옴니버스시조상기 작품이 옴니버스시조이며, 중안시조대상 수상자인윤금초의 청맹과니 노래가 그 시발점이다."옴니버스시조"는 한 편의 연작시조(連作時調) 속에 앞에서 말한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混合) 연형시조(連形時調) 형태를 말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 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윤금초가 시도된 새로운 시조 형태라는 것이다.
| ㆍ작성자 |
검정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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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05/10/15 (토) 21:36 |
| ㆍ분 류 |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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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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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대상 12회 / 윤금초
|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제정 년도 : 1982년 |
| 중앙시조대상 |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0년 이상인 시조시인, |
| 중앙시조시인상 |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 | 대상 1993년 주몽의 하늘 / 윤금초
그리움도 한 시름도 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흰 適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왕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 오고 막다른 벼랑에 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 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 천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四神圖 布置하는, 광활한 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촌 평 3 여부를 떠나 그저 글쓰기에 불과하다. 여기서 글쓰기라는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조는 글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저따위를 시조라 뽑았으니 중앙시조대상이 어느 동네 상인지 모르겠다. 시조는커녕 시도 될 수 없기에 평할 수 없다. 평을 요구한다면 평자를 모독하는 것이다. 시조가 저리 잡다하고 수준 또한 저렇단 말인가?
시조를 망가트리지 못해 안달하던 무리들이 온갖 잡종을 생산하더니, 드디어 옴니버스시조란 괴물이 출현하고 말았다. 단시조도 제대로 짓지 못하는 주제에, 홑시조, 단시조, 연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등 모든 형식을 망라하는 시조를 짓겠다니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가람 이병기가 자유시 작법은 도입한 이래, 시조도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도저히 시조라할 수 없는 현대시조는 고시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매몰차게 시조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조운은 자유시처럼 행갈이하여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은상은 단장시조와 양장시조를 만들어 시조를 더럽혔다. 여기에 작자는 이에 뒤질세라 잡다한 옴니버스시조라는 것을 등장시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시조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렸으니 도대체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시조를 찾는단 말인가?
민족문화란 계승되는 것이지 시대에 따라 변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람 이병기를 비롯하여 시조를 망가트린 작자들이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앞잡이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시단서도 시는 짧아야 한다는데, 본디 짧은 시조를 자유시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장황하게 수다를 떨더니 이제는 아예 옴니버스시조라는 것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상기의 것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중앙시조대상을 수상 받을 만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필자는 윤금초에게 과연 시조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정신적 지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 여파가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으니 시조를 부정하고 망가트리는 행위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일제 치하 일본을 찬양했던 반민족문인들이 민족의 혼이라해도 과연이 아닌 3.1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 받고, 민족의 시조에 대표적 반민족문인 최남선의 호를 따서 육당시조문학상이 제정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한치 앞도 모르는가? 자신의 어줍잖은 행위가 시조라는 아름드리 솔나무를 갈아먹는 송충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시조를 지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자유시를 쓸 것이지 구차하게 시조 주위를 맴돌며 되니 안되니 헛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자신들 능력에 맞게 본질을 변형시켜 놓고 마치 발전인양 떠벌리고 있는 무리와, 글자 수만 맞추면 시조가 되는 줄 아는 엉터리들이 시조라고 내놓은 것은 차라리 시조의 사망통지서다. 시조가 아닌 것이 국내 최대의 권위를 자랑하는 중앙시조대상에 선정되고, 얼치기와 들치기들이 다만 밥그릇 수를 채웠다고 시조의 대가로 군림하고 있으니 시조의 앞날은 실로 참담하고 암울하다 하겠다.
시조가 무엇인지 아는가? 시조가 무엇인지 알고나 떠드는가? 면면히 흘러가야 하는 시조에게 행여 걸림돌은 아닌가 살펴 볼 일이다. 제대로 된 단시조 하나 짓지 못하는 주제에 시조가 이렇네 저렇네 떠들며 시조의 발목을 걸어 넘어트리지 말고, 시조를 짓기 전에, 지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리고 시조라 하기 전에, 두루두루 살펴 볼 일이다.
자칭이건 타칭이건 소위 지조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조차도 시조가 무엇인지 모른다. 시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외한들이 시조계에 있는 한, 시조는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시조가 무엇인지 각인 시키고자 그 유명한 황진이 시조 6수에서 한 수를 내려 놓는다.
동지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옴니버스시조
상기 작품이 옴니버스시조이며, 중안시조대상 수상자인윤금초의 청맹과니 노래가 그 시발점이다.
"옴니버스시조"는 한 편의 연작시조(連作時調) 속에 앞에서 말한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混合) 연형시조(連形時調) 형태를 말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 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윤금초가 시도된 새로운 시조 형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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