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 ◀ 원문보기 클릭 ▶

시에 별다른 반응이 없던 외국시인에게 시조를 보여 주었더니 대단히 감탄하였다 한다. 시는 외국에도 지천에 널려 있으니 비록 국내서 인정(?)받는 시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늘 상 보아왔던 것에 불과할 것이다. 외국시인들이 왜 시조에 감탄하였을까?그것은 시조는 자유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조에는 자유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예가 있다. 음보율, 구와 장을 거처 압축과 절제등 매우 까다로운 관문들을 통과하여야 한다. 시조는 낱말 한 개라도 규격에 맞지 않으면 시조가 될 수 없다시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황진이다. 사람들은 황진이를 우리 시조문학사 최고의 시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섹익스피어라 할지라도 황진이의 시조와는 견줄 수 없다 하겠다.  작품 평(작품을 생산한 배경을추적함)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명월이라는 기명을 가진 기녀다. 기녀는 일가를 이루지 못한다. 뭇 남정네에게 웃음을 파는 기녀들이 여념 집 아낙네보다 높고 깊은 것은 한이리라. 기녀도 여자이기에 님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황진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육신을 함부로 취급하였거나(기녀는 여념 짐 아낙의 절개와는 차원이 틀리지만 기녀는 기녀 나름대로 절개가 있다) 황진이의 영혼을 앗아간 남자가 없었다면 불후의 명작인 "동지 달 기나긴 밤"은 생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어쩌리, 황진이가 연모하는 님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지만 모래성과 같다. 이 밤이 지나면 님은 떠나가야 한다.  황진이가 님과 마지막 만난 날이기도 하고 이별한 날을 47자 글자를 단서로 하여 추적해 본다.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 굽이굽이 펴리라" 했으니, 이별한 날은 겨울이 아닐 것이다 계절서 '겨울'을 빼면 '봄' '여름' '가을'이 남는다. 과연 '봄' '여름' '가을'에서 어느 계절에 님은 떠난 것일까? 황진이는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뒤에 피력) '동지 달'로 끊어도 될 것을 구태여 '기나 긴 밤'이라 하여 밤이 길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바램은 항시 극에서 시작하여 극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황진이가 님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겨울의(동지 달) 반대인 여름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일년 중 가장 밤이 짧은 하지로 단정하게 하는 단서가 '동지 달'에 이어 언급한 '기나 긴 밤'이다. 님은 이별이 못내 안타까워 소매 자락을 쉬 놓아주지 않는 황진이의 울먹이는 어깨를 다독거리며 종다리 앞장세워 오겠다고 언약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중장 '춘풍 이불'이다.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몽땅 춘풍 이불에 서리서리 넣지 않고 왜 한 허리만 베어 낸다 하였을까?님 생각이 절정에 도달한 것이 겨울일 것이다. 그것도 밤이 가장 긴 동지달로 자신의 심경을 노출한 것이리라.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춘풍 이불에 모두 담지 않고 굳이 한 허리만 베어내었다. 황진이가 계절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소시 적 소풍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처럼(50 이전 세대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황진이도 봄날을 손꼽아 기다렸으리라. 사모의 정이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어 건드리면 터질 것같이 농익은 날에 마침내 님께서 약조하신 대로 종다리 앞장세우고 오셨으니 사모의 뚝을 허물고 내닫는 기쁨을 그 무엇으로 막리. "다음에는 동풍을 앞장세우고 동지 날 오소서"꿀맛 같은 하룻밤을 수탉이 침범하자 황진이가 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작품의 흠동지 날에 연상되는 것은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이다. 조그마한 종지에 대해를 담기 위해서는 낱말이나 어휘서 쉬 연상되는 것을 사용하여여 한다. 그렇다고 연상되는 것을 재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기 작품서 굳이 흠을 잡으라면  "동자 날 기나 긴 밤"이다. 그것은 중복이다. 전체적 맥락서 볼 때 긴 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동지 달에 굳이 밤이 길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가면서시조는 절제다. 독자적인 것도 모든 것이 서로 연계되어 상호 협력하고 보완한다.  참고 (출처 : 홍성란과 함께 읽는 명사들의 시조 ☜) 황진이의 시조 여섯 수 가운데 '동짓달~'은 스물일곱 살에 만난 당대의 명창 이사종을 그리며 쓴 시조다. '어우야담'에는 진이의 집에서 3년, 이사종의 집에서 3년을 살기로 약조하고 6년간의 애정생활 뒤에 깨끗이 돌아섰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판 계약결혼이다.일찍이 풍악산.태백산.지리산 등을 유람했던 진이가 한번은 사또의 잔치 마당에 불려가 벼슬아치와 기생들이 가득한 마당에서 거문고를 타게 됐다. 해진 옷을 입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 이를 잡으며 태연자약 거문고를 타는 진이를 보고 모여든 기생들은 기가 죽었다. 이렇듯 기개 우뚝한가 하면 옷깃 여미고 하늘하늘 노래하는 섬세한 여심이 '동짓달~' 같은 시조를 낳았다. 홀로 지새는 겨울밤은 얼마나 길고 긴가. 그 긴 시간 한 허리를 툭, 베어내서 봄바람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이 어쩌다 오시면 굽이굽이 펴겠다고 절절히 노래했다. '숭양기구전'에 따르면, 진이가 기적(妓籍)에 오르기 전에 떠꺼머리 홍윤보가 진이를 짝사랑하다 그만 상사병에 죽고 만다. 상여가 진이의 집 앞에 이르자 말이 슬피 울며 가지 않았다. 속적삼과 꽃신을 얹어주니 상여가 움직였다. 이처럼 아픈 사연이 있었기에 진이는 다음의 시조처럼, 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야/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백호 임제(1549~1587)의 시조다. 그는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는 길에 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이 시조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가, 임지에 이르기도 전에 파직당했다. 호방한 이 풍류랑의 얘기도 곡진한 심회를 살뜰히 담을 수 있었던 시조 3장에서 비롯한다. 요즘 황진이가 장안의 화제다. 소설도 나오고 영화도 만들고 지금은 TV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이 모든 일이 진이가 낳은 시조에서 비롯된다. 김종서(1390~1452)가 구국의 명장으로 기억되는 건 웅혼한 기상이 넘치는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가 있기에, 이순신(1545~98)이 넬슨 제독보다 훌륭한 함장으로 기억되는 건 진중(陣中)의 고뇌를 담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시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황진이가 우리 가슴에 영원하듯이 시조는 영원하리라. 그나저나 먼 훗날 내 무덤가에 와 울어줄 임제 같은 한량 하나 생기게, 깊고 먼 시조 한 수 남기고 싶다. 작품출처 : 청구영언 성격 : 평시조, 연정가(戀情歌) 표현 : 의태법 의태어(짓시늉말)로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사물의 모양이나 태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의 일종이다. 시자법(示姿法) 또는 의상법(擬狀法)이라고도 한다. 의성법과 함께 의유법(擬喩法)으로 묶기도 한다. 한국어는 모음과 자음의 규칙적인 교체에 의하여 어감을 다각도로 분화시킴으로써 사물의 모양이나 행동·태도를 미묘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의태어가 특징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사물이나 인간의 양태에 대한 묘사력이 뛰어날수록 현실감을 자아내게 한다. 예를 들면 ‘거북이는 엉금엉금, 토끼는 깡총깡총’은 ‘엉금엉금’ ‘깡총깡총’이라는 의태어로 의태법을 사용한 문장이다. (출처 : 네이버) 주제 : 정든 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심정

ㆍ작성자 검정삿갓
ㆍ작성일 2006/11/26 (일) 15:27
ㆍ분 류 시조
ㆍ조회: 1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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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시에 별다른 반응이 없던 외국시인에게 시조를 보여 주었더니 대단히 감탄하였다 한다. 시는 외국에도 지천에 널려 있으니 비록 국내서 인정(?)받는 시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늘 상 보아왔던 것에 불과할 것이다.
 
외국시인들이 왜 시조에 감탄하였을까?
그것은 시조는 자유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조에는 자유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예가 있다. 음보율, 구와 장을 거처 압축과 절제등 매우 까다로운 관문들을 통과하여야 한다. 시조는 낱말 한 개라도 규격에 맞지 않으면 시조가 될 수 없다

시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황진이다. 사람들은 황진이를 우리 시조문학사 최고의 시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섹익스피어라 할지라도 황진이의 시조와는 견줄 수 없다 하겠다.
 

 작품 평(작품을 생산한 배경을추적함)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남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명월이라는 기명을 가진 기녀다. 기녀는 일가를 이루지 못한다. 뭇 남정네에게 웃음을 파는 기녀들이 여념 집 아낙네보다 높고 깊은 것은 한이리라. 기녀도 여자이기에 님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황진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육신을 함부로 취급하였거나(기녀는 여념 짐 아낙의 절개와는 차원이 틀리지만 기녀는 기녀 나름대로 절개가 있다) 황진이의 영혼을 앗아간 남자가 없었다면 불후의 명작인 "동지 달 기나긴 밤"은 생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어쩌리, 황진이가 연모하는 님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지만 모래성과 같다. 이 밤이 지나면 님은 떠나가야 한다.
 
황진이가 님과 마지막 만난 날이기도 하고 이별한 날을 47자 글자를 단서로 하여 추적해 본다.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 굽이굽이 펴리라" 했으니, 이별한 날은 겨울이 아닐 것이다 계절서 '겨울'을 빼면 '봄' '여름' '가을'이 남는다. 과연 '봄' '여름' '가을'에서 어느 계절에 님은 떠난 것일까? 황진이는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뒤에 피력) '동지 달'로 끊어도 될 것을 구태여 '기나 긴 밤'이라 하여 밤이 길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바램은 항시 극에서 시작하여 극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황진이가 님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겨울의(동지 달) 반대인 여름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일년 중 가장 밤이 짧은 하지로 단정하게 하는 단서가 '동지 달'에 이어 언급한 '기나 긴 밤'이다.
 
님은 이별이 못내 안타까워 소매 자락을 쉬 놓아주지 않는 황진이의 울먹이는 어깨를 다독거리며 종다리 앞장세워 오겠다고 언약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중장 '춘풍 이불'이다.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몽땅 춘풍 이불에 서리서리 넣지 않고 왜 한 허리만 베어 낸다 하였을까?
님 생각이 절정에 도달한 것이 겨울일 것이다. 그것도 밤이 가장 긴 동지달로 자신의 심경을 노출한 것이리라. 동지 달 기나 긴 밤을 춘풍 이불에 모두 담지 않고 굳이 한 허리만 베어내었다. 황진이가 계절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소시 적 소풍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처럼(50 이전 세대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황진이도 봄날을 손꼽아 기다렸으리라. 사모의 정이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어 건드리면 터질 것같이 농익은 날에 마침내 님께서 약조하신 대로 종다리 앞장세우고 오셨으니 사모의 뚝을 허물고 내닫는 기쁨을 그 무엇으로 막리.
 
"다음에는 동풍을 앞장세우고 동지 날 오소서"

꿀맛 같은 하룻밤을 수탉이 침범하자 황진이가 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작품의 흠
동지 날에 연상되는 것은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이다. 조그마한 종지에 대해를 담기 위해서는 낱말이나 어휘서 쉬 연상되는 것을 사용하여여 한다. 그렇다고 연상되는 것을 재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기 작품서 굳이 흠을 잡으라면  "동자 날 기나 긴 밤"이다. 그것은 중복이다. 전체적 맥락서 볼 때 긴 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동지 달에 굳이 밤이 길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가면서
시조는 절제다. 독자적인 것도 모든 것이 서로 연계되어 상호 협력하고 보완한다.
 
 참고 (출처 : 홍성란과 함께 읽는 명사들의 시조 ☜) 
황진이의 시조 여섯 수 가운데 '동짓달~'은 스물일곱 살에 만난 당대의 명창 이사종을 그리며 쓴 시조다. '어우야담'에는 진이의 집에서 3년, 이사종의 집에서 3년을 살기로 약조하고 6년간의 애정생활 뒤에 깨끗이 돌아섰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판 계약결혼이다.

일찍이 풍악산.태백산.지리산 등을 유람했던 진이가 한번은 사또의 잔치 마당에 불려가 벼슬아치와 기생들이 가득한 마당에서 거문고를 타게 됐다. 해진 옷을 입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 이를 잡으며 태연자약 거문고를 타는 진이를 보고 모여든 기생들은 기가 죽었다.

이렇듯 기개 우뚝한가 하면 옷깃 여미고 하늘하늘 노래하는 섬세한 여심이 '동짓달~' 같은 시조를 낳았다. 홀로 지새는 겨울밤은 얼마나 길고 긴가. 그 긴 시간 한 허리를 툭, 베어내서 봄바람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이 어쩌다 오시면 굽이굽이 펴겠다고 절절히 노래했다.

'숭양기구전'에 따르면, 진이가 기적(妓籍)에 오르기 전에 떠꺼머리 홍윤보가 진이를 짝사랑하다 그만 상사병에 죽고 만다. 상여가 진이의 집 앞에 이르자 말이 슬피 울며 가지 않았다. 속적삼과 꽃신을 얹어주니 상여가 움직였다. 이처럼 아픈 사연이 있었기에 진이는 다음의 시조처럼, 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야/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백호 임제(1549~1587)의 시조다. 그는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는 길에 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이 시조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가, 임지에 이르기도 전에 파직당했다. 호방한 이 풍류랑의 얘기도 곡진한 심회를 살뜰히 담을 수 있었던 시조 3장에서 비롯한다.

요즘 황진이가 장안의 화제다. 소설도 나오고 영화도 만들고 지금은 TV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이 모든 일이 진이가 낳은 시조에서 비롯된다. 김종서(1390~1452)가 구국의 명장으로 기억되는 건 웅혼한 기상이 넘치는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가 있기에, 이순신(1545~98)이 넬슨 제독보다 훌륭한 함장으로 기억되는 건 진중(陣中)의 고뇌를 담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시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황진이가 우리 가슴에 영원하듯이 시조는 영원하리라. 그나저나 먼 훗날 내 무덤가에 와 울어줄 임제 같은 한량 하나 생기게, 깊고 먼 시조 한 수 남기고 싶다.


작품출처 : 청구영언

성격 : 평시조, 연정가(戀情歌)

 표현 : 의태법 의태어(짓시늉말)로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사물의 모양이나 태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의 일종이다. 시자법(示姿法) 또는 의상법(擬狀法)이라고도 한다. 의성법과 함께 의유법(擬喩法)으로 묶기도 한다. 한국어는 모음과 자음의 규칙적인 교체에 의하여 어감을 다각도로 분화시킴으로써 사물의 모양이나 행동·태도를 미묘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의태어가 특징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사물이나 인간의 양태에 대한 묘사력이 뛰어날수록 현실감을 자아내게 한다. 예를 들면 ‘거북이는 엉금엉금, 토끼는 깡총깡총’은 ‘엉금엉금’ ‘깡총깡총’이라는 의태어로 의태법을 사용한 문장이다. (출처 : 네이버)

주제 : 정든 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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